목차 바로가기
- 쥐죽은 집에서도 세계는 열린다
- 첫 하우스시팅, 개 한 마리와 160만원
- "나는 집 청소 알바인가, 여행자인가?"
- 이젠 여행도 재테크의 한 갈래로 본다
- 예상치 못한 보너스: 잉여시간과 창작의 여유
쥐죽은 집에서도 세계는 열린다
돈은 없고, 여행은 하고 싶었다.
이쯤 되면 흔한 사연. 우리 부부도 그랬다. 결혼 후 5년, 1년에 1번 겨우 해외여행 한번씩 다녀오는 게 전부였다. 연말 되기 전까지는 빚 갚고, 공과금 내고, 자녀 계획 세우며 정신없는 와중에, 딱 일주일쯤 일상에서 벗어나는 게 '표준의 행복'이라 굳게 믿고 살았달까.
그러다 어느 날, 잘 나가던 친구가 발리며 멕시코며 고주망태처럼 돌아다닌 걸 자랑한다. "너 로또 됐냐?" 했더니 돌아온 답, "하우스시팅 하고 있어."
그러니까 집을 봐주는 대신, 여행을 ‘공짜로’ 한다는 건데.
이게 말이 되나 했지만, 우린 해봤고, 여전히 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첫 하우스시팅, 개 한 마리와 160만원
우리의 첫 하우스시팅은 그리 낭만적이진 않았다.
캐나다의 한 외곽 도시. 주인은 일주일 동안 가족여행을 떠났고, 우리는 남겨진 로트와일러 한 마리를 돌보며 식물에 물 주고, 택배만 받아주면 됐다. 하루에 개 산책만 두 번, 풀장 옆에서 맥주 마시는 게 대부분의 일정이었다.
그런데 계산해보니, 항공권 두 장 130만원 절약. 주인이 자동차 렌트비도 대주니 30만원 아낀 셈. 거기다가 1일 100달러씩 수고비까지 줬다. 즉, 쉬면서 돈도 받는 셈.
그 전까지는 호텔 요금 아깝다고 도미토리만 돌던 우리였기에, 눈이 번쩍 뜨이더라.
이후부턴 아예 전략적으로 움직였고, 하우스시팅 요청 목록을 수시로 확인했다. 마치 부동산 앱 보듯, 마음에 드는 지역, 조건, 기간 리스트업해두고 타이밍 보며 지원. 몇 달 간격으로 영국, 이탈리아, 멕시코까지 순차 정복.
사실상 ‘여행에 드는 숙박비’ 자체가 없다는 건 여행의 패러다임을 바꿔준다. 예전에는 항공권 가격 보고 포기하던 여행이, 이젠 ‘거기만 가면 먹고 잘 걱정 없네?’로 바뀌는 셈이다.
"나는 집 청소 알바인가, 여행자인가?"
물론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집은 반려동물이 예민한데다, 식물 종류도 열댓 가지로 조화롭게 배치해놔선 매일 ‘식물 박사’처럼 굴어야 했다. 어떤 집은 '거실은 무조건 하루 2회 청소'라는 엄격한 규칙이 있었다. 반려견🐶 다리는 안 닿게 하랬는데, 얘는 계속 안방 쪽으로 쏘다니고.
심지어 어떤 집은 퇴근하고 돌아온 듯한 집주인 얼굴로 점검 메시지가 쏟아졌다.
그 와중에 나에게 물었던 질문:
“지금 여행 중이야, 아니면 파출부 파견 나왔나?”
하지만 결론은 늘 같았다. "그래도, 이 돈으로, 호텔 가서 체류하면 더 힘들고 더 비싸다." 라고. 뭐… 심지어 짜증났던 어느 시드니 여행의 기억은, 풀장 앞 멍하니 있던 사진과 함께 ‘괜찮았던 추억’으로 미화돼있다.
이젠 여행도 재테크의 한 갈래로 본다
요즘 내 생각에 여행은 더 이상 소비가 아니다.
어떤 이에게는 당연히 휴양이고, 어떤 이에게는 콘텐츠이고, 누구에겐 소득의 창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부부에게 하우스시팅이 갖는 의미는 그 중간 어딘가의 포지션이다.
소비를 줄이면서도 누릴 건 누리고, 자산 그 자체도 아니지만 불리는 재테크의 연장선 위.
한 유튜버가 ‘벌지 않아도 아끼면서 더 살아보는 방법'으로 하우스시팅을 얘기했다는데, 충분히 공감한다. 대출 이자에 시달리는 우리 세대에겐, 일상마저 자산으로 바꾸는 기술이 필요하니까.
예상치 못한 보너스: 잉여시간과 창작의 여유
어떤 이는 여행지에서 촬영한 영상으로 채널을 키우고, 어떤 이는 블로그 글의 소재로 사용한다.
우리도 그런 건 아니지만, 하우스시팅은 주는 게 많다. 예컨대 ‘가끔 아무 일정 없는 오후가 던져주는 정적’. 거기서 무언가 써볼 생각을 했고, 써보니 글이 되고, 나중엔 지금 이 글로 연결되기도 한 셈이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만약 우리가 ‘여행은 돈 있는 사람만의 취미’라고 받아들였더라면, 여전히 항공권 앱만 들여다보며 지났을지도 모른다. ‘하우스시팅이라는 문장’ 하나가, 우리 삶의 아주 큰 단락을 새로 시작하게 해줬다는 것. 참 희한하고, 고맙다.
이번 여름, 또 어딘가 누군가의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며 그 동네 공원이나 시장을 하나씩 걷게 될 것이다. 지나가는 개, 철 지난 가구, 야자수 그늘…
이제는 ‘그냥 쉬는 게 아니다’ 싶은 그런 여행이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