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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자동차 시장? 알고 보면 한국 이야기다.
- SUV 열풍의 민낯
- 누가 전기차를 사는가: 모순과 현실 사이
- 반사이익? 한국 제조사에게도 불똥은 튄다
- 소비는 올라가는데, 우리는 왜 불안할까?
필리핀 자동차 시장? 알고 보면 한국 이야기다
최근 필리핀 차량 판매가 8% 증가했다는 통계를 보고 잠시 멍해졌다.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싶다가도, 자동차 시장이라는 게 은근히 사람 사는 이야기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아예 에세이라고 해 두자.
대한민국 열 두 평 오피스텔의 좁은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며 흘려듣던 해외 경제 뉴스 한 줄로 시작한, 부동산과 자동차, 소비 그리고 불안에 대한 이야기.
요컨대, 필리핀 사람들이 차를 더 사고 있다는 건 단순히 경제 지표 그 이상을 보여주는 거다.
SUV 열풍의 민낯
필리핀에서 SUV, 픽업트럭 등 이른바 ‘고하중, 고지상고’ 차량 판매가 14%나 증가했다. 반대로 일반 승용차 판매는 14%나 감소했다.
차를 바꾸는 이유가 ‘멋’보다 ‘침수 방지’이기 때문이란다.
2024년 말에 태풍, 홍수 등 이상 기후로 골치를 앓으면서, 웬만한 승용차는 길에 떠내려가곤 하는 현상이 벌어진 것.
이런 상황에서 SUV나 픽업트럭은 단순한 “레이저로 눈썹 다듬기”가 아니라, “비 오는 날 우산 쓰는 일”이 되어버렸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기조가 있었다. 2021년 수도권 집중호우 이후, 카니발, 팰리세이드 그리고 렉스턴 같은 대형차의 중고차 시세가 들썩였던 거 기억나는가?
친구 중 하나는 비 오는 날 서울 외곽 고속도로에서 차 트렁크까지 물이 들어와서 결국 차를 바꿨다.
기준은 단순했다. “타이어 한 뼘 이상 올라가 있어야 돼. 물이 차도 안 죽어야 돼.”
SUV 타는 이유가 트렌드도, 신분 과시도 아닌, 말 그대로 ‘생존’이 되어버린 거다.
누가 전기차를 사는가: 모순과 현실 사이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건 필리핀에서도 전기차 판매가 늘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BEV(순수 전기차)보다 하이브리드 차량이 압도적으로 많이 팔렸다는 점이다.
전체 전기화 차량 5,311대 중 4,544대가 하이브리드.
왜냐고?
필리핀 정부는 기존 BEV에 국한했던 무관세 혜택을 하이브리드(Hybrid Electric Vehicle, HEV)으로 확대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친환경이고 뭐고 간에 “세금 깎아준다니까” 샀다는 이야기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미비한 지방 도시에 사는 지인은 결국 하브리드를 택했다.
“충전하느니 그냥 주유소 가는 게 낫다.”
그리고 정부 보조금 있을 때 샀다. 지원 끊긴다고 하면? “몰라, 그냥 가솔린 차 살래.”
사실 많은 소비자는 친환경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정부 정책에 더 민감하다.
그래서, 환경을 지키는 게 아니라, 보조금을 지키기 위해 친환경차를 산다.
괜찮다. 그게 보조금의 본래 역할 아니겠는가?
반사이익? 한국 제조사에게도 불똥은 튄다
놀랍게도, 한국 브랜드는 이 좋은 ‘SUV 수혜’ 국면에서 존재감이 미미하다.
도요타, 미쓰비시, 닛산, 스즈키, 포드는 뚜렷하게 판매 수익을 냈지만, 현대와 기아는 기사에 등장조차 없다.
현대차나 기아차는 동남아 시장 진입이 늦었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만으론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미 2019년에도 “현대차는 왜 아세안 시장에서 약세를 보일까?”라는 리포트가 있었다.
로컬화 실패, 가격 전략 미비, SUV 라인업의 부재 등 복합적 요소가 있다.
마치 이런 느낌이다.
판교 어딘가에서 베트남 음식 전문점을 연 친구 이야기.
“로컬에서 먹던 쌀국수를 그대로 가져오면 안 되더라. 김치랑 곁들여야 사람들이 좋아하더라.”
글로벌 전략이 아니라 지역 전략이 중요한 시대. 동남아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SUV만 만들면 뭐하나, 사람들이 원하는 색상, 옵션, 가격은 또 전혀 다르니까.
소비는 올라가는데, 우리는 왜 불안할까?
기사에서는 필리핀 GDP가 5.6% 성장했대서 차량 소비가 늘었다고 했다.
“경제가 좋아지니까 차도 늘어난다.” 이 말은 당연하게 들린다.
그런데 이상하다.
우린 언제부턴가 경제지표가 좋아 졌다는데도 내 삶은 여전히 긴축 중이다.
점심값은 오르고, 커피는 이제 테이크아웃으로 줄이고,
자동차? 신차는 커녕, 정비비가 더 무섭다.
“브레이크 패드 다 닳았어요” 한 마디에 50만 원이 훅 날아가는 삶.
이번 필리핀 자동차 시장 회복 소식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을 들이민다.
남들은 휘황찬란한 소비를 하는데, 나는 왜 벨트를 계속 조이고 있는가?
차가 없어서가 아니라, 미래가 안 보여서,
빚이 있어서가 아니라, 확신이 없어서.
🔚 마무리하며
SUV든 전기차든, 해외 시장의 소비 흐름이 꼭 남의 얘기만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필리핀에서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리는 SUV 한 대를 보면서,
나는 서울에서 버스 기다리며 들었던 한 생각.
“나도 소비 좀 해보고 싶다. 어깨 펴고, 떳떳하게.”
그게 참 어려운 시대다.
📌 여러분은 요즘 어떤 소비가 제일 망설여지시나요?
댓글로 여러분의 경험을 나눠주세요. 몸은 서울에 있어도, 마음은 SUV 타고 필리핀 달리고 싶을지 모르니까요.
- 글쓴이: 도시 외곽, 15년 차 전세살이의 철학자. 🛠️🚗📉